마지막 업데이트 : 2023년 03월 08일
조회수 : 

바스크 생태미식여행 어벤저스팀의 러닝저니 3편

바스크의 문화인류학적 특징 그리고 남자의 부엌 ‘초코(txoko)
Written by: 김 현숙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바스크의 문화인류학적 특징 그리고 남자의 부엌 ‘초코(txoko)

바스크는 피레네 산맥 서부에 있는 지방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 있다. 프랑스쪽에서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바스크인들은 자신의 언어와 역사에 깊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바스크지역에서는 표지판이나 메뉴 등에 스페인어와 바스크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바스크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많다. 지금도 바스크어를 할 줄 아는 젊은 인구가 50%를 넘는다.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약 350만 명이고, 중심 도시는 빌바오(Bilbao)다. 이들의 바스크 역사와 문화, 특히 언어에 대한 자긍심은 매우 유별나다. 바스크인의 긍지는 대서양 탐험과 혁신의 진취적인 기상과 융합되어 그들만의 경쟁력을 갖추었다.

바스크의 자부심의 뿌리를 만나다: 문화인류학적 고찰

바스크인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으며, 18세기부터 주민 일부가 바스크어를 사용하고 독자적 문화를 고수하는 등 민족주의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1933년 바스크 자치주가 탄생했지만, 스페인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 출범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이 이를 탄압하여 망명 정부가 수립되었고, 바스크 조국과 자유(Euskadi Ta Askatasuna, ETA)가 등장해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시작하면서 2011년 영구 휴전과 무장활동 중지를 선언하기 까지 스페인 정부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면 오랜 기간 갈등을 겪어왔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바스크인들은 최소 기원전 3천 년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는 단일 정체성과 문화가 분명한 단일민족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주민들이다.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에 피레네 산맥 부근에 수천 년간 정주민으로 살던 원시 바스크인(Proto-Basque people)과 인도유럽어족을 쓰는 이주민(스페인인, 프랑스인)들 간의 혼혈화된 후손이다. 바스크처럼 고립된 언어와 정체성을 가진 민족은 고대 로마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언어들이 확산되면서 다 사라져가고, 다소 고립된 지역에 살던 바스크족의 언어만 살아남은 것이다.

선사시대 유적을 통해 보면 전통적인 바스크인의 거주 지역은 피레네 산맥을 중앙에 두고 프랑스의 가스코뉴와 아키텐, 스페인 북부 산악 지대와 해안에 걸쳐 있었다. 이들이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기원전 3,000년~5,000년부터 현재까지) 정착민으로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바스크인의 조상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 시대 유적들은 청동기 시대에 점점 산지로 이동하며 요새화되는데, 다른 유럽계 민족들과의 마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스크를 모계사회로 이끈 대서양의 거센 파도 넘어 세계와 만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달 이전부터 바스크족 어부들이 대서양에서 참치잡이로 부를 축적하는 와중에 신대륙까지 비공식적으로 갔다온 적이 여러 번 있다는 설이 있다. 확실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참치잡이를 위해 먼 바다까지 갔다가 우연히 아메리카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492년에 아메리카에 도달했던 콜럼버스보다는 진출이 늦었지만 1530년 경 바스크족 포경업자들이 타국의 지원도 없이 독자적으로 이곳에 도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받고 있다. 바스크족은 참치뿐만 아니라 대구잡이로도 유명했다. 당장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생선 요리가 바로 말린 대구인 바칼라우(Bacalhau)였다.

바스크지역의 기념품 상점에서 눈에 띄는 것이 베레모다. 특수부대에서 쓰는 베레모의 유래가 이들의 전통모자인데, 유럽에서 강한 불굴의 전투 민족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점령 당시 프랑스군도 이들의 게릴라 전술로 힘겨워 했다. 게릴라 어원의 유래가 된 민족이기도 하다. 최근까지도 ETA 등 테러 단체로 활동한 바 있다. 이들은 이슬람을 상대로만 800여 년 동안 방어 전선을 형성하였고, 통합 스페인 왕국 창립이후 16~17 세기 유럽 최강 스페인 육해군의 일익을 담당했다. 중세 시대 바스크족은 다른 유럽인들과 다르게 바이킹들과 평화적으로 교류했는데 이들로부터 조선술, 항해술을 전수받았고 바이킹 몰락 이후에는 대서양의 주인으로 불렸던 만큼 조선술과 항해술에 매우 뛰어났다.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의 후원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도 이미 신대륙을 다녀왔던 바스크족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도 한다. 또한 당시 어획, 고래잡이, 선박, 철광석 수출 등의 사업을 했고 영국, 북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며 무역 흑자로 막대한 수입을 올려서 당시부터 꽤나 부유한 지역이었다.

바스크 남자들의 부엌에는 고기와 생선, 와인, 소금이 있다

바스크의 지형은 대서양과 면한 항구 도시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들이 바다를 이용해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에 힘쓴 역사보다 산에서 목축을 하고 땅을 일구며 산촌 사람으로서 살아간 세월이 훨씬 길다. 그래서인지 해산물만큼이나 많이 먹는 음식이 출레타(chuleta)라고 하는 구운 고기 요리다. 많은 바스크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아사도가 바스크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질이나 굽는 방식이 흡사하다고 한다. (바스크 어벤저스팀이 제대로 출레타를 맛볼 수 있었던 곳은 톨로사였다. 톨라사 이야기에서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다.)

바스크지역에는 이러한 역사와 민족적 특성을 유지해오면서 초코(txoko)라는 독특한 남성들의 사교클럽을 발달시켰다. 소위 ‘남자들의 부엌’인데, 약 100년 전에 동네 친구들끼리 공간을 빌려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노래하고 마시는 사교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30년 프랑코 독재정부가 민족주의 일환으로 표준어인 카스티야 이외의 언어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시키면서 독자 언어를 갖고 있었던 바스크인들이 정부의 감시를 피해 바스크어를 할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초코였다. 초코 회원들은 매달 일정액을 회비로 자금을 만들어 공동주방이 딸린 공간을 운영한다. 서로 개발한 메뉴나 식재료나 최신 유행하는 조리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초코는 원래는 오직 남성들만 입회가 가능한데 그 이유는 모계 중심 사회였던 바스크 지방에서 남성들이 자신들만의 일탈을 위한 방편으로 초코를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게따리아 엘카노 지역의 차콜리 와이너리 오너의 증조할아버지는 초코에서 친구들에게 내기로 와이너리를 걸었다가 지는 바람에 자신의 와이너리를 친구에게 넘겼는데, 우여곡절 끝에 다시 되찾았다는 어이없는 무용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다음에 바스크를 방문할 때는 몬드라곤 본부의 안드레아 센터장이 자신의 초코에 초대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바스크의 남자들의 부엌에서 어떤 재미난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꼭 직접 체험해볼 기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cross